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괴베클리 테페 (문단 편집) == 유적지의 건설 == [[파일:external/images.nationalgeographic.com/gobekli-full_35417_600x450.jpg]] 괴베클리 테페는 언덕 위에 [[스톤헨지]]처럼 원 모양으로 세운 돌기둥이 특징인데, 기둥들에는 여러 가지 [[곤충]]과 [[동물]] 형상이 양각되어 있다. 돌기둥들은 T자 형상을 하였는데 사람을 나타낸 듯하다. T자형 돌기둥의 몸통 부분(ㅣ부분)에는 손과 인체형상이 조각되었지만 얼굴 부분(ㅡ부분)에는 아무 조각도 없다. T자형 유물은 한국의 [[솟대]]에서도 볼 수 있는데, [[새]]가 하늘과 인간을 연결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가 앉는 [[횃대]]를 형상화한 것이다. 다른 유적에는 사람 얼굴을 새겼으므로, 여기서는 얼굴을 조각할 수 있지만 하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이곳이 일상생활을 위한 장소가 아님이 유력하다. 굳이 중간에 T자형 돌기둥을 세워 몸통 부분에 손 모양을 조각한 점을 보건대 신앙을 위해 신을 형상화했지만 얼굴은 조각하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유적지 주변에서는 농사를 짓거나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학자들은 수렵채집에 의존했을 건립집단이 이곳에서 연중 어느 정도는 머무르며 종교적 행사를 치렀으리라 본다. 이는 주변에서 잡아서 이곳으로 가져와 먹고 묻은 야생동물들의 뼈가 대량으로 발견된 점에서 유추하였다. 돌기둥을 세우고자 인근에 위치한 석회암 언덕에서 바위를 떼어내 운반했는데, 기둥 하나의 무게가 10-20톤에 달하기 때문에 운반과 조각, 건설에 적어도 5백 명 이상 대규모 인력이 필요했으리라 보인다. 이 시기는 겨우 원시적인 [[농업]]이 시작되려던 [[신석기 시대]] 초기로 추정한다. [[고고학]]계의 기존학설에 따르면, 인류가 이러한 거대유적을 조성하려면 체계적으로 토목활동이 가능한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하려면 [[농경]]생활에 따른 체계화된 사회조직이 등장해야 한다. 그런데 괴베클리 테페에서 [[문자]][* 유적의 기둥에서 문자로 추정되는 기호는 발견되었다.]나 [[바퀴(도구)|바퀴]], [[토기]], [[청동기]]의 사용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점, 그리고 [[농업]]이나 [[가축]] 사용을 짐작하게 할 만한 유물도 발견되지 않은 점이 기존 신석기 혁명과 농업발전을 통한 인류의 집단사회 구조형성[* 수렵생활 → 농경&정착생활 → 국가 및 종교의 출현이 일반 상식]과 충돌한다. 사실 집단사회 형성이 농경보다 앞설 수 있음은 학계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논의되어 충분히 받아들여진 내용이므로 그 자체가 그렇게까지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괴베클리 테페가 발굴되기 전인 1997년에 나온 [[총, 균, 쇠]]에 관련 언급이 나온다. 하단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농학]]도 없고 체계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던 시대에 원시 농업을 하는 것이 수렵채집을 하는 것보다 실패 가능성도 높고 오히려 투자 시간 대비 비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학계 수준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로 논의 된 것이었지, 이를 뒷받침할 만한 특별한 근거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설은 수렵채집 → 농경생활(집단 사회 형성) → 국가/종교의 출현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이것이 전세계 역사 교과서에 실리며 보급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농경 이전의 집단사회가 이러한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대규모일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놀랍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